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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영복음(prosperity gospel)의 뿌리를 찾아서
    Bethel's Thought 2011. 10. 1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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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영복음(Prosperity Gospel or Prosperity Theology)을 단순히 정의하자면, 신앙을 통해 물질적 축복을 받을 수 있다 혹은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신앙의 한 형태를 말합니다.  한국 개신교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번영복음의 모습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강조하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번영복음이 한국 개신교의 전래과정에서 기복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무속신앙과의 혼합(syncretism)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적인 상황만을 본 근시안적 시각에서 비롯된 설명입니다. 번영복음의 형태는 이미 19세기 말 미국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신사고 New Thought 운동의 영향)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4세기 콘스탄틴 (Constantine) 황제의 개종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유스토 곤잘레스 (Justo Gonzales)는 기독교사를 총괄적으로 조망한 Story of Christianity에서 기독교 신학이 로마 황제의 공인으로 인해 나타나는 첫 변화로 바로 부유함에 대한 인식 변화를 지적합니다. 로마 황제의 공인 이전까지 주로 개신교인들은 사회지도층이라기 보다는 하층민들에게 더 친화적인 종교였으며 (이 점은 Cellsus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난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부자들의 구원 문제는 해석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의 하나로는 신약성서에 기록된 “부자가 천국에 이르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 해석은 일부 신학자들에 의해 단순히 우화적인 설명으로 바늘귀는 실제 바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벽에 붙어있는 문을 지칭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원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더 문맥에 어울릴 것이라고 봅니다.

            곤잘레스는 기독교가 로마 황제에 의해 공인되면서 이제 부유함이나 권력이 신의 축복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곤잘레스의 설명에 근거한다면 번영복음의 뿌리는 단순히 한국적인 상황이나 19세기 미국의 사조 이전에 기독교사의 아주 초기에 나타났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로마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힘든 박해를 피하게 되었지만, 공인 이후에 나타난 기독교의 변화들이 이후 기독교사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결과적으로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같습니다.


            한편,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족장”들의 이야기에 근거해 본다면 축복의 개념이 물질, 건강, 자손의 축복과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적 축복의 관념에서 보면 번영복음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번영복음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신앙을 통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명제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번영복음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통해 획득한 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신앙 그 자체로 인한 축복과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낙타의 바늘귀 비유도 부유함의 획득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부유함의 축적/지속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자신들의 원형으로 삼고자 하는, 아니 기독교사에서 이상적인 원형으로 다루어지는 초대 교회의 모습도 “축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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